

옥창열 시인/프로필
- 동국대 졸업, 특정직 국가공무원(3급) 퇴직
- 경기한국수필가협회 부회장 역임
- 『워낭소리의 추억』 등 수필집 3권, 시조집 2권 출간
- 글벗문학상, 석교시조문학상, 경기문학인대상 수상
- 문학 및 음악 유튜브 채널 『시, AI선율로 피어나다』 운영
- 대중가요 450곡 국내외 14개 음반사 발매
옛날 고려에서는 늙은 부모를 산에다 버렸다는 속설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고려장(高麗葬)’이라 불렀고, 마치 우리 조상들이 효를 몰랐다는 증표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어디가 고래장(경상도 발음) 터였다더라”는 둥 발 달린 소문이 돌아다녔다. 그러나 공부를 해보니,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바람은 돌을 깎지, 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고려장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외지인의 잘못된 인식과 식민의 그림자 속에서 태어난 슬픈 전설이다.
고려시대는 노인을 버리기는커녕, 효를 법으로 강제하던 시대였다. 『고려사』를 들춰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조부모나 부모가 살아 있는데, 아들과 손자가 재산을 따로 나누고 공양하지 않으면 죄로 다스린다.”
또 다른 기록에는, 효자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노인들에게 예물을 하사한 왕의 손길이 적혀 있다. 이런 나라에서 과연 늙은 부모를 산에 버리는 풍습이 있었겠는가. 말은 마음의 그릇이라 했거늘, 왜곡된 말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오랜 세월 헷갈리게 했던가.
고려장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건 고려시대가 아니라, 1882년 미국인 그리피스의 책 『은자의 나라 코리아』에서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조선 땅을 밟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알고 있던 조선은 일본인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조선’이었다. 거기엔 조선인의 숨결도, 역사도 없었다.
그리고 1924년, 일제 조선총독부는 『조선동화집』에 ‘부모를 산에 버린 사내’ 이야기를 실었다. 마치 우리 민족이 비정하고 패륜적이라는 듯이. 2년 뒤에는 나카무라 료헤이라는 자가 비슷한 내용을 또다시 책에 실어 퍼뜨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줄거리와 흡사한 이야기는 오히려 일본의 전통 설화에서 등장한다. 일본 중부 나가노 지방에는,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늙은 부모를 깊은 산에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본판 고려장이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는 부모가 늙으면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산에 올라가는 과정을 그렸고, 1983년에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했다.
즉, 일본 내부의 설화나 전통 속에 있었던 내용을, 일제가 조선에도 있었던 것처럼 조작하여 동화로 만들고, 식민 교육을 통해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꺾으려 했던 것이다.
불교 경전인 『잡보장경』에도 늙은 부모를 갖다 버리는 ‘기로국(棄老國)’이라는 인도 설화가 실려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인륜과 도덕이 확립되기 전, 미개한 시대에는 그런 일도 실제 있었을지 모른다. 천재지변이나 전란으로 기근이 극한상황에 이르면 식인 행위조차 벌어졌다고 하니, 가족 중 누군가를 버리는 일이 가능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고려사』에도, 『삼국유사』에도, 늙은 부모를 버렸다는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없다. 타국의 허구적 전설이 일제의 손에서 조선의 그림자처럼 덧씌워진 것일 뿐이다.
고려장은 없었다. 있었던 것은, 늙은 부모에게 따뜻한 밥을 올리고, 무릎 꿇어 안마해드리던 자식들의 정성뿐이었다. 우리는 효를 ‘효도’라 부르기 전에 ‘의무’로 알았던 민족이다. 설화 속 눈물은 슬프지만, 역사 속 기록은 단단하다. 그 어떤 전설보다 확실한 건, ‘노인을 공경한 민족’이라는 우리의 DNA다.
